# 1
주인공의 감각과 감정적 변화는 세밀하고 현실적으로 표현되며, 모든 포착가능한 영화적 기법은 거기에 쏟아부어져 있다. 파멸적인 상황이 오기까지의 전개가 상당히 빠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선택에 납득할 수 있으며 매 순간의 심정적 동요에 공감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제 3자의 눈으로 봤을 때 모든 선택의 주된 요인은 그녀의 무너진 가치관 탓임을 엿볼 수 있기에 핵심 주제가 명확히 유지된다.
반면 그 외의 모든 요소들은 시종일관 과장되고 비현실적이거나 모호하게 처리되었다.
> [!cite]- 비현실적 요소들의 예시:
> - 방송 제작진이나 앞집 이웃의 대사는, 일반적인 남녀 갈등 혹은 여성주의 논제가 떠오르지도 않을 정도로 노골적이고 우스꽝스럽다.
> - 대체 뭔 에어로빅 쇼 하나로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지, 게다가 수 또한 에어로빅 쇼 원툴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가지는 상징성은 있지만 현실적이진 않다.
> - 어디서 공구랑 건축 자재를 잔뜩 구해서는 뚝딱뚝딱 비밀 공간을 시공해버린다. 내 욕실 타일도 좀 고쳐주세요.
> - 불규칙한 출근과 미스터리한 행적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주변인들.
> - 잘 만든 게임 튜토리얼처럼 직관적인 약물 설명서와 인트로 비디오. 관객으로선 알아먹기 쉽지만, 거 약물 부작용도 미리 안 알려주고 다 ‘내 탓이오’ 하라니.
> - 랩탑이나 TV 화면에 표시되는 내용은 어떠한 lighting 조정도 없이 철썩 붙인 듯하고, 다른 인물의 발화를 떠올릴 때에도 합성물 밈 마냥 얼굴이 뿅뿅 튀어나온다.
나는 이런 식의 표현-핵심 요소 외에는 싹 비우거나 노골적으로 비현실적 전제를 까는 것-을 꽤 좋아한다. 이로써 의도한 바를 더 예리하게 전달할 수 있고, 지나치게 방만한 해석도 방지할 수 있다.
# 2
난장판이 다 끝난 뒤, 주인공의 머릿가죽(?)이 끙끙대며 기어가 자신의 명예의 거리 플레이트 위에 다다르고, 비로소 편해진다. 핏자국 또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말끔하게 청소된다. 오프닝에서 표현된 플레이트의 금 간 모습도 이 시점에선 고고한 영광의 기록에 누가 되지 않는다.
내다버린 전신 사진과 달리, 자신이 열정으로 이뤄낸 성취의 결과물 위에서 취하는 안식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단순히 fame에 대한 집착만을 나타내진 않을 것.
우리가 스스로에게 바라는(혹은 강요당한) 이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과 함께, 문득 돌아보면 각자의 진정 소중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고, 돌아가 안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도 함께 담은 듯하다.
# 3
> [!note]
> 예매 사이트의 리뷰란에서 마지막 장면에 대한 해석과 배우 외모 이야기 가지고 신명나게 싸우고 있는 걸 봐버린 탓에, 지나치게 사회적 이슈에 몰입해 작성된 내용.
> 실제 대부분의 리뷰는 ‘**고어하면서도 강렬한 연출로, 당연한 주제임에도 충격받고 고민하게 됐다**’ 정도이고, 싸움꾼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
> 하지만 그 싸움꾼들에게 맞설 수 있단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라.
러닝타임 내내 젊음과 아름다운 외모를 갈망하는 주인공 본인의 선택과 감정에 집중하고, 모든 외부 요소는 상술했듯 우스꽝스럽게 과장하거나 거의 상징적으로만 표현된다. 그런 요인들이 주인공에게 크고작은 영향을 미쳤더라도, 결국엔 주인공 본인의 인식과 반응에 모든 초점을 맞춰놓는다. 작중 시점에서 그녀는 이미 대성공한 스타이고, 인기는 시들해졌어도 여전히 매우 부유하고 사랑받는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에, 일련의 사건에 대한 원인으로 다른 현실적 제약이나 외부 압력을 탓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러다 괴물화한 주인공이 무대에 오르는 장면에서 그동안의 주변 인물이 한 말들을 다시 상기시켜주는데, 그것이 또 괴물화한 모습과 일치하기도 해서 이제와 "이러한 발언과 사회적 압박이 괴물을 만든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순간 느낄 수 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껏 빌드업 하나 없이 질 낮은 반전을 취하는 게 됐겠지.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않고,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거 나에요', '이게 나에요' 라고 재차 말함으로써 다시금 주체를 외부가 아닌 본인으로 돌려놓는다. 한편으론 '이전엔 아름다운 외모로 감쌌을 뿐, 원래부터 이런 괴물이었다.'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최후반 하이라이트, 유방을 뱉어낸 뒤 피를 연신 뿜어대는 것으로 세상에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 이건 사회에 대한 원망 및 변화 촉구의 비명이라기보단, 지금껏 본인에게 걸려있던 꼬인 여성성에 대해 일말의 저항을 하지 않다 마지막 최악의 상태에서 최악의 형태로 그것을 내려놓게 되는, 비극적으로 뒤틀린 카타르시스 해소를 나타내는 것 같다.
즉, 이 영화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자신으로부터의 개선 및 사회적 고정관념에 맞서 싸우는 강인한 자세를 요구하고, 스스로 파괴적인 괴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목소리에 가깝다. 일관되게 언급하는 '둘 다 당신이다, 원래의 당신을 소중히 해야 한다(she/it matters)'가 핵심 주제이지, 주변 인물들이나 사회적 풍조가 주인공을 괴물로 만들었다는 논지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게 실제로 옳든 아니든, 외모지상주의 하에 돌아가는 사회/미디어의 문제와 거기에 주인공 또한 편승/굴복했다는 사실 중 당신이 무엇에 더 무게를 두든, 적어도 이건 그런 싸움판 떡밥으로 활용될 영화는 아니다.
# 요약
'B영화'다운 고어한 장면이나 극렬한 피 분수쇼가 벌어지면서도, 다른 번잡한 요소들을 깔끔하게 배제하며 원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정갈함이 있다고 본다.
실상 온건하고 자성적인 메세지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외치기. 나는 이 점도 퍽 좋다.
<sub><sup>(영화와는 무관) 극단적인 의견이 목소리를 키우기 좋은 시대에, 온건함을 택한다면 여전히 입을 닫는 게 미덕이라 하는 사회. 온건한 이야기를, 극단에 대한 거부를 크게 외치는 게 필요하다.</sup></sub>
# Etc
> [!cite]- 사소한 생각조각들
> - 마지막 시퀀스가 타란티노 영화에 대한 오마주라 하던데, 뭐 장르로든 장면으로든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한편 사회 이슈와 연결지어 해석할 여지를 많이 남기지 않으며 그저 앞으로만 와장창창 나아가는 걸 보면, 또 타란티노의 성향과도 부합하는 면이 있으려나
> - 주방 벽 너머 거실 액자와 도로변 광고판으로 주인공의 감정 상태와 두 인격의 취급이 변화하는 걸 보여준다. 반복적으로 나오는데다 화면상 간격이 아주 커서, 자연스럽게 그런 인식을 유도한다기보단 직설적으로 때려박는 느낌. 난 별 생각 없는데, 영화적 기법을 정말 많이 보고 해석하기 좋아하는 분들은 이렇게까지 노골적이면 살짝 아래로 치기도 할까?
> - 물에 뭔가를 담그거나, 인물들이 음식을 뜯거나, 식재료를 손질할 때의 이펙트를 매우 강하게 때려박는다. 그런데 한니발 렉터 시리즈나 덱스터의 그것과 같이 끔찍한 느낌을 유도하는 효과가 그다지 체감되진 않았다.
> - 물론 방송사 임원들의 모습에서는, 성적 은유나 직접적인 언급 그리고 마초적이며 게걸스러운 제스처를 강조한 것. 하지만 그런 것과 별 관련 없는 순간도 많다.
> - 주인공이 심적으로 예민해져 주변의 모든 움직임과 소음을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표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에서 나오는 생각일 뿐 딱히 그런 건 아닐 것.
> - 엄청난 몸매의 주인공이 거울 앞 누드 포즈를 취하고 섹시댄스 일변도의 방송을 하는데 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외모와 행위 뒤의 서사가 그럴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 돌이켜보니 딱히 고수위의 행위 묘사는 없었으니 그저 무지 예쁠 뿐 섹슈얼할 여지는 별로 없긴 했고.
> - 영상 편집에 대해 무지하지만, 흔히 영화에서 보는 화면보다는 뮤직비디오 혹은 유튜브 패션/뷰티 컨텐츠의 온도가 느껴졌다. 작품 내 상황과 같이 외모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컨텐츠이자, 여성층 소비심리가 훨씬 강하게 작용하는 분야. 이건 너무 과한 해석인가?
- [[collapsible|collapsible block 지원해줘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