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L; DR 희대의 이야기꾼, 액자식 고뇌의 권위자. 고전 중의 고전도 놀란놀란 놀란화 빔을 피할 수 없어 --- ## 👍 #### 희대의 이야기꾼 위대한 원작을 영화로 만들 때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을 것이다: - 그대로의 이야기를 생생하고 압도적으로 풀어내거나 - 이야기를 재해석해 이면을 들추고 새 의미를 부여하거나 이 중에서 후자를 극단적으로 잘 해낸 경우가 아닐까. 원작의 기본 골자를 따라가면서도 새로운 주제의식을 끌어내고야 마는데, [[The Dark Knight]]에서도 그랬듯 익히 보여준 엄청난 무게감이지만, 고전 중의 고전을 가지고도 그걸 해낸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 있다. #### 주제 '제우스의 법'으로 대표되는 "우린 the greatest civilization에 살고 있다"는 믿음과, 그것을 깨고 "사람 간의 신뢰와 합의가 무너지는" 선택을 했던(혹은 해야만 했던) 긴 전쟁과 귀향길의 상황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바다 민족에 대해 갖던 두려움 그 자체를 행해 왔다는 깨달음과 고뇌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힘, 술수, 야만의 방식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것을 행한 장본인으로서 업보를 치르고 있다는 죄의식. 액자식 구성의 신답게 오디세우스의 귀향길 사건들과 트로이 전쟁 막바지 그리고 현 시점 이타카의 일들이 병렬적으로 제시되며 이 중심 주제를 향해 함께 빌드업된다. 이 주제를 향한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자칫 지루하고 무용해질 수 있는 그 모든 오디세우스의 항해 이야기를 적절하게 잘라 중간중간 보여주는데, 필요한 사건들만 남긴 채 키르케나 칼립소 같은 인물들은 각색하기도 하며, 오디세우스와 주변 인물들의 고뇌와 반목을 나타내는 소재로 사용해주었다. 이 아저씨의 영화엔 언제나 고뇌 말고 다른 감정이 제대로 남아나질 않는데, 그 와중에 인물의 복잡한 고뇌를 서사 재구성을 통해 공감할 수 있도록 맛있게 떠먹여주는 데에 있어선 도가 텄다. 물론 이 영화에선 원작의 틀이 있으니 그게 덜 강렬할 수도 있지만,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에 이렇게 큰 스케일의 메세지를 섞어 먹이는 게 얼마나 대단한가. (이런 분이 어째서 [[Tenet]]에서는 그저 상상력 자랑, 촬영 기법 자랑 일변도로 가 버렸던 걸까?) #### 인본주의, 사실주의... 인가? - 실제 고대 이집트-그리스 청동기 문명을 공격했다는 바다 민족의 기록을 트로이 전쟁과 함께 소재로 삼아, 현재까지 유지되는 인간사의 아이러니를 잘 엮어주는 상술한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정해진 운명 앞 인간들의 고군분투를 담았다는 원작을 넘어 더욱 인간 중심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 인물들에 부여된 신화적 서사는 최대한 부숴버리겠다는 듯한 캐스팅과 생략된 이들 - 아가멤논은 무슨 살아 움직이는 거신상 같은데 목소리엔 위엄이 없으며, 무장을 벗으니 호리호리하고 젊은 청년의 실루엣이 튀어나오고 - 헬레네 역에는 누가 봐도 세계 최고의 미녀는 아닌 배우 선정에, 나아가 얼굴에 흉터까지 박아 그저 전쟁을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는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내준다. 특히 이 점은 몇 장면을 할애해 반복적으로 전달하는데, 구구절절 설명한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는 아니다. - (뜬금없게도 [[Hope]]가 떠올랐다. 의외의 요소들이 전부 의도적인 거라고 꿋꿋이 밀어붙이며 꺼드럭댈 뿐, 이야기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 - 안티오노스가 페넬로페를 설득하는 말을 할 때 베틀에 가려지는 얼굴. 그가 속내를 감추고 있다는 걸 표현하는 화면상의 연출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국가 경영에 대한 실로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한번쯤 인물과 무관하게 들어보도록 만들기도 한다. 직후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의 대화 또한 마냥 아름답고 절절한 이야기가 아닌 앞으로의 통치에 대한 것이며, 오디세우스의 귀환 때까지도 그 둘의 대화는 서로만이 가진 가치의 대립과 견제를 포함한다. (현대의 세대갈등이나 여성운동이 떠오를 여지가 있는 대사와 함께) - 오디세우스는 신의 저주에도 저항하겠다는 선언을 하지만, 실제론 키르케나 망자들의 안내를 따라 항해하며, 그들의 예언대로 부하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을 점점 받아들이게 된다. 이 점에 있어서만큼은 원작에서와 같이 운명에 휩쓸리는 서사를 그대로 따라가는데, 최종적으로 칼립소를 떠나 뗏목을 타고 돌아갈 때엔 완전히 운명과 신들에게 자신의 모든 걸 맡기는 자세를 보여준다. (원작의 "나는 뗏목을 만들어서라도 당장 집에 갈거야ㅠㅠ!" 와는 대비되는 표현) 그저 옛날 유행마냥 '업보를 치르고 결국 믿음에 귀의하니 죄를 사한다' 따위의 간편한 종교적 얼버무림을 하려는 건 아닐 것이다. 고난의 과정을 거친 뒤 개인의 죄의식과 기존 이념의 자기파괴적인 면을 온전히 마주하고서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고, 그로 인한 피는 자신의 손에 모두 묻힌 채 다음 세대를 위해 떠나간다는 이야기. #### etc - 칼립소가 원작에서와 달리 PSTD 걸린 군인의 정신을 연착륙시켜주는 역할로 나오는데, 흠. - 마침 미국이 이란을 공격해 전쟁이 벌어졌고, 그 전쟁이 다름아닌 물류 공급망 확보를 위한 것이기에 영화의 소재와 메세지가 정확히 대응될 수 있는 묘한 타이밍이 되었다. 물론 이 영화가 처음 기획되었다는 2024년 말 혹은 촬영이 시작된 2025년 초에 이 사건을 예견했을 리는 없고,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세계 곳곳의 갈등을 보며 이런 주제 의식에 힘이 실릴 순 있었겠지. [[The Brutalist]]도 국내 개봉 시점에 마침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작살내고 있었고, 이 영화가 나올 땐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니, 우연이지만 참. --- ## 👎 - 둘이 함께 서쪽 바다로 떠나자는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곧바로 [[The Dark Knight Rises]]와 [[Tenet]]에서 썼던, 초중반 상상/회상과 엔딩을 연결하는 치트키를 쓸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장면 자체도 아주 비슷하고. 그래서, 아주 훌륭한 재해석임에도 "음음. 놀란식 영웅 서사는 보통 이런 장면들과 이런 대사가 들어가는구나. 오딧세이아를 다만 놀란화 했을 뿐이구나!" 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 페넬로페 그리고 아테네(혹은 오디세우스의 가책이 만든 환영)에게 작품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고백한 뒤, 구혼자들을 전부 죽여 파멸적인 복수를 끝내고 오디세우스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며 불타는 트로이 목마를 떠올리는 장면으로 끝냈어도 좋았을 듯하다. 혹은 다음 세대를 상징하는 텔레마코스가 왕위를 이어받은 뒤, 그의 성장에서 엿보이는 희망과 동시에 일말의 불안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면 어땠을지. 대신 본작은 완전히 희망적인 메세지의 엔딩을 넣었는데, 좀 갑작스러운 감이 있다. 마치 [[라쇼몽 (영화)]]이 영화판에서 추가한 엔딩과 같은 느낌. 그래도 마냥 "새벽이 밝아오면"같은 문장만이 아닌 "우리의 잘못은 또한번 잊혀질 것이다"라는, 참회 및 반복되는 죄의 굴레에 대한 인식이 담긴 말로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는 듯하다. --- ## 영화 외적인 생각 #### IMAX 호들갑 IMAX, IMAX....... 하도 일반관에서 잘려나가는 화면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지라, 필름이야 그렇다 쳐도 디지털 상영 시엔 화질을 줄이고 화면을 다 보여주면 되는 게 아닌지, 다양한 화면비에 대응되는 상영 기술이 과연 그렇게 어렵고 한계로 가득한 것인지 불만이 끓어올랐다. (소극적인 기술 도입을 마케팅 언어로 감추는 게 예술 분야에서 유독 심하다고 생각) 그러다 관람 당일날에, 갑자기 일반관에서 봐도 되겠다는 믿음(?)의 사고회로가 돌았다: 1. 감독이 아이맥스로 안 보면 자신의 의도가 전달 안 된다는 식으로 말한 바 없다. 2. 이게 일종의 최신 촬영/상영 기술의 보급을 바라는 운동이라 해도, 그 기저에는 작품이 최대한 온전히 전달되는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 (가령 ott 개봉 제한을 계약 조건에 넣는 것처럼) 그게 맞다면 일반 상영관에서도 의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감상이 가능하도록 했을 테고, 그게 아니라면 애초에 존중할 필요가 없는 호들갑이다. 3. 리뷰들을 보니, 화면보다는 음향이 더 중요하다고. 그리고 실제로 이 영화의 주안점은 굉장한 영상미에 있지 않았고, 그걸 통해 세계관에 몰입하게 만드는 데에 집중하지 않았다. 스펙타클한 장면들은 되려 이야기와 메세지의 전달을 위해 잠시 소모되는 정도이고, CG를 최대한 배제한 촬영 때문인지 압도적이거나 박진감 넘치는 느낌도 기대보단 매우 덜했다. ([[Oppenheimer]]의 핵실험 장면이 그러했듯) 그 정도의 영상으로도, 일반관에서 보여지는 화면의 내용으로도 충분히 극 중 세계와 인물에 몰입할 수 있고 이야기가 설득력있게 전달되니까.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돌고돌아, IMAX 필름으로 다 찍었지만 일반관에서도 열심히 상영하는 주제에 마치 IMAX로 안 보면 인생 손해보는 것마냥 호들갑을 떨었던 마케팅은, 다만 작품이 온전히 전달되는 바라는 작자의 마음까지 팔아먹은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CG를 쓰더라도 최대한 실제적인 구현과 주변광 통제를 시도하고, [[Dune (영화)]]같은 작품에 찬사를 보내고, 대세로 정착되지 않은 필름 포맷과 그에 맞는 촬영 기법을 고집하며 기술의 최전선을 푸쉬하는 행보의 기저에 그 대전제가 있을 것이기에, 경의를 받아 마땅하지, 그저 똥고집이 아닐 것. #### Xi Pal 요새 영화관 갈 때마다, 영화에 푹 빠져서 열성적으로 울고 웃고 놀라는 와중에 정작 지 품에서 굴러다니며 연신 켜져대는 폰은 신경쓸 수 없는, 그게 없어지면 정서불안에 걸려버릴 것 같은 련롬들이 왜 이렇게 많나요